2023. 11. 13. 20:28ㆍ정보 공유/퀴즈 모음
오늘은 유 퀴즈 온 더 블록 213회 “추석특집”편 퀴즈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이 선수의 힘찬 스윙 하나가 우리의 자부심이자 희망이었습니다.
‘세상을 빛내리’ 라는 이름처럼 세계 명예의 전당에 오른
한국 골프의 영웅, 리치 언니 박세리
▶ 두 번째 유퀴저 : 박세리
▷ “대한민국 골프는 박세리 전과 후로 나뉜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 골프계의 입지전적인 인물.
- 15세에 골프에 입문
- 1년 뒤 16세 아마추어 신분으로 프로들을 제치고 우승한 골프 천재
- 1996년 프로 데뷔
- 1998년 미국 LPGA 투어 진출 첫해 <맥도날드 챔피언십> 우승
- 1998년 가장 큰 메이저 대회라 불리는 <US 오픈> 당시 최연소 <US 오픈> 우승자로 등극하면서 IMF 시절 전 국민에게 희망을 주었던 선수
- 2007년 박세리 “최연소 · 亞 최초” LPGA 명예의 전당 입성
- LPGA 통산 25회 우승의 대기록을 가진 대한민국 골프의 전설
▷ 어떻게 골프를 시작하게 되었는지?
세 자매 중 유일하게 운동을 좋아했던 둘째로 태어났어요. 그러면서 초등학교 3학년 때 육상부에 들어서 육상을 하게 됐고 중학교 역시 육상부의 스카우트 제의로 입학을 했어요.
아빠가 골프를 권유하셨던 건 6학년 때쯤인 것 같아요.
연습장에 저를 데리고 가셔서 느닷없이 클럽 하나 주더니 “쳐봐”하셨는데 어떻게 치겠어요.
골프 연습장에 가면 첫인상이 어르신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큰 관심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러던 중, 아버지의 친구분과 골프 대회 관람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선수 몇 명을 소개해 주시는데 초등학교 전국 1등, 중등부 랭킹 1위라고 당시 최고라는 또래 선수들을 소개받고 나니 “뭔지 모르겠는 스파크가 딱 온 것 같아요.” 그래서 ‘골프를 한번 해봐야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본격적으로 골프를 해보겠다고 한 거죠.
제가 욕심이 많아요. 어릴 때부터 그래서 내가 무엇을 선택하든 ”항상 최고가 될 거야”가 항상 있었어요.
▷ 당시 박세리 선수가 어떤 훈련을 했는지 수많은 프로그램들이 나왔는데 기사에 나온 훈련들 다 사실인가요?
기사에 나온 훈련들 다 맞는 사실인데 하나만 잘못돼서 기사가 나갔어요.
공동묘지 가서 연습했다는 거는 있지도 않았었고요.
그때는 지금처럼 골프장이 많이 있진 않았잖아요. 그래서 골프장을 산을 깎아서 만들다 보니까 그 골프장 산속에 묘지가 존재하기도 했었죠. 아마 그 이야기가 와전되어서 기사에 나온 것 같아요.
▷ 16세 나이에 우승을 하셨는데?
그때는 프로도 아니고 중학생 아마추어인 신분으로 나갔어요.
골프 룰도 많이 모르고 대회를 나가며 알아가던 때였는데
유재석 : 그때 원재숙 프로님과 연장전까지 가셨다고요?
박세리 : 저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연장전이라는 것도 몰랐어요. 끝나고 나서 18번 홀까지 점수가 동률이 되어 연장전을 진행하는데 “경기를 했던 17, 18번 홀에서 연장전을 진행하겠다.” 라는 말을 듣고 ‘17번 홀부터 치겠지’라고만 그 정도의 기본 상식만 갖고 있었어요.
원재숙 프로가 샷을 하자, 갤러리분들이 박수를 엄청 치셨어요.
‘가까이 잘 치셨구나’라고 생각을 했죠. 그리고 제가 쳤는데 제 생각에는 잘 쳤다고 생각이 드는데 박수 소리가 안 나는 거예요. 그래서 올라가서 홀과 멀리 떨어진 공으로 다가가니 제 공이 아닌 거죠. 제 거는 홀 옆에 붙어 있더라고요.
그때는 원재숙 프로님의 팬들이 많았을 때라서 무명이었던 저는 잘 쳤는데도 환호성이 없었던거예요.
그리고 원재숙 프로님이 먼저 퍼터를 하셨는데 성공을 못 하셨죠.
저는 1.5m 정도 거리의 공을 넣어서 성공을 했죠.
근데 저는 우승한지 몰랐죠. 끝났는지 모르고 17홀을 끝냈으니 18홀로 가야지 하고 뛰어가는데 어디 가냐고 부르더라고요. 우승했다고 그때 알았죠.
“그 우승으로 인해서 아직까지 연장전에서 진 적이 없는 거죠.”
▷ 스무살에 미국 여자 골프 협회에 도전을 하게 됩니다. 주변 반응은 어떠했나요?
LPGA (미국 여자 골프 협회) : 세계 여자 골프 중 가장 큰 규모의 단체
되게 부정적이었죠. 환경 자체가 아예 다르다보니까 얼마 버티지도 못하고 돌아올텐데 왜 굳이 가냐? 한국에서 잘하고 있으니까 한국에서 해라. 라는 이야기를 많이 했죠.
유재석 : 하지만 이런 주변의 이야기를 뒤로하고 혈혈단신 미국으로 떠나셨어요 영어는 공부하고 가셨어요?
박세리 : 아니요. 저는 정말 단순히 ‘큰 무대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준비 없이 무작정 간 거예요. 영어책을 많이 샀는데 한번을 안 써봤어요.
유재석 : 당시 Yes Or No 만 하는 상태였는데 라커룸에 들어가면 말을 걸까 무서웠다고?
미국은 모르는 사이끼리도 거리낌 없이 토크하는 문화니까
박세리 : 처음 보는데 먼저 인사를 하니까 ‘응? 나한테 하는 건가?’ 하다가 눈을 마주치기 전에 토크를 할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는 거죠. 그 뒤의 답을 해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이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라커품 대신 차에서 신발을 갈아신고 다녔어요. 라커를 안 들어갔죠. 아니 못 들어갔죠.
유재석 : 근데 영어를 유창하게 하시잖아요?
박세리 :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5개월 뒤에 첫 우승을 하게 되죠. 첫 우승 후 많아진 인터뷰 요청들로 인해서 그때부터는 ‘안되겠다 하든 못 하든 내가 직접 해보겠다!’라고 시작했는데 생각하신 그대로예요. 영어가 짧아요.
기초 영어를 구사하며 지내다가 얼마 있다가 US 오픈에서 또 우승을 했죠. 그 뒤 더 인터뷰 요청이 많아졌어요. 근데 보니까 기자분들이 물어보는 질문이 거의 비슷해요. 매번 비슷한 패턴으로 진행된 인터뷰라서 기자분들이 질문하는 거를 다 기억을 해놔요. ‘아 이런 느낌이구나’하면서 질문 암기식 영어 학습으로 실력을 향상시켰죠.
▷ 1998년 첫 <US 오픈> - 아직도 기억에 선명한 <맨발 우승 경기>
연장전 상황 속 물웅덩이 쪽으로 빠진 박세리 선수의 공 방법을 고민하던 박세리 선수는 양말을 벗고 물웅덩이로 들어간다.
공이 물웅덩이로 빠졌을 때는 ‘경기가 끝났다’ 생각이 들 수 있잖아요?
처음에는 빠진지 몰랐고 ‘물 근처까지 갔겠구나’라고만 생각했죠!
막상가니까 연못에 들어가 있는 상황인데 공이 잔디 위에 떠 있었던 거예요.
“공이 떠 있는 걸 보고 마음이 달라졌던 거죠.”
“아직 기회가 남아 있구나 끝난 게 아니구나 ” 그래서 그 도전을 했던 거죠.
- 박세리는 퍼팅에 성공하며 US 오픈 우승을 차지한다. -
▷ US 오픈 우승 당시의 감정?
제가 미국 진출하면서 목표 중의 하나가 ‘선수 생활 동안 US 오픈에서 한 번만이라도 우승했으면 좋겠다’ 라는게 저의 바램이었는데 첫 회에 우승한거죠.
저 대회 우승하고 나서부터 저도 시작외 됐던 거예요.
‘ 하면 뭐든지 다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을 했고 그래서 도전에 대한 두려움이 하나도 없어요.
만약에 그 샷을 실패했었더라도 그 선택에 대해서 절대 후회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해보지 않으면 실패일지 경험에서 얻는 교훈일지 모르는 거잖아요.
‘가자, 선택했으니까 가보자.’
제가 선수 생활을 오래 했지만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손의 감각이 최고였어요. 딱 그때 한번이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자신감을 많이 얻었고 도전을 하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들도 많아지지 않았나?
당시 한국에서는 IMF시절......
한국에서는 또 다른 의미였겠죠. 경제적으로도 너무 힘든,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데
하필 그 상황이 마치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고난과 비슷한 상황이었고 결국에는 헤쳐나와서 다시 일어선다는 의미를 가졌던 경기였기에
진짜 그러셨대요. 심지어 한강 다리에서 경기를 보시고 다시 돌아가서 일어서신 분들도 있으시더라고요. 그 말씀 해주시는데 저도 감회가 달랐던 것 같아요.
▷ 처음 진출했을 때 경기장에 태극기가 걸리지 않았었다고?
없었어요. 원래 출전 선수 국기가 다 꽂혀 있거든요.
당연히 ‘나도 있으니까 꽂히겠지’ 했는데 한동안 못 봤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가 두 세 번 우승하고 나서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보는 것과 외국에서 보는 것은 달라요.
외국에서 국기를 보면 “가슴이 웅장해진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 같아요.
유독 더 밝고 환하게, 힘차게 휘날리는 것 같이 보여요.
어깨가 든든해지는 것 같고 힘이 들어가는 것 같고 그만큼 에너지가 있다는 거죠.
▷ 그 후 박세리 선수는 LPGA 통산 25회 우승을 달성하고 2007년, LPGA / 세계 골프 명예의 전당에 등록되는데 이는 골프 선수로서 최고의 영예라고?
현재 LPGA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유일한 두 한국 선수가 박세리 / 박인비
흉상은 세계 명예의 전당에 가면 있어요.
조세호 : 저 궁금한 게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시면 베네핏이 있나요?
박세리 : 갖고 있는 명예가 다죠!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는 순간부터는 전 세계 골프장 어딜 가도 인정해주고 대우를 해주시고
▷ 어렵게 오른 명예의 전당, 그 이후 큰 슬럼프가 왔다고?
1년 반 정도 고생했죠.
2004년 우승 직후 국내 대회에 출전했다가 바로 다시 가서 미국 대회 경기를 하는데 그때 시작이 됐던 거죠. ‘시차 때문에 피곤해서 그렇겠지’ 생각하고 넘겼는데 다음 대회에서 더 컨디션이 나쁜 거예요.
평소에 잘 하던 동작을 못하게 되는 현상 ‘입스’
필드에 서는 순간부터 아무것도 안 보여요.
‘이거 어떻게 해야 되지?’
‘오늘 하루를 어떻게 해야 되지?’
이런 생각 밖에 안 들었어요.
내 자신이 아닌 거죠. ‘어제와 다른 나’ 그게 너무 무섭더라고요.
마음처럼 되지 않는 샷에 하루하루가 너무 괴로웠어요.
‘분명히 뭔가 잘못됐을 거야’ 수정하고 교정하고를 무한 반복해요.
결국에는 자는 시간, 먹는 시간 점점 더 줄어요.
한창 어려울 때 동생이 잠깐 와 있었어요. 하루는 갑자기 저한테 동생이 그러는 거예요.
“이러다 언니 죽을 것 같다고, 미친 사람 같대요. 나한테....”
쓰러질까 걱정될 정도로 훈련에만 매진하던 중 손가락에 부상을 입게 돼요.
클럽도 못 잡으니까 모든 게 끝난 거잖아요.
포기가 아니라 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 버린 거죠.
그동안 내가 어떻게 선수 생활 했을까? 오로지 옆 보지 않고 앞만 보고 달렸던 것 같아요.
저는 항상 어떻게 생각했냐면
‘힘들어, 근데 나만 힘든 거 아니니까’
‘아파, 나만 아픈 거 아닌데’
잘하면 잘할수록 더 잘하려고 채찍질만 했던 거예요.
한 번도 나에게 ‘나 정말 오늘 잘했다. 수고했다.’라고 한 적이 없어요.
그러다가 번 아웃이 찾아온 거죠.
그 뒤로 스스로 정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되더라고요.
‘내가 골프를 어떻게 시작했지?’ 시작했던 나로 다시 가보자!
초심으로 돌아가서 하루하루 다르게 생각했어요.
나 어제보다 오늘이 좀 더 나아진 것 같아!
그리고 ‘내일은 더 좋아지겠지?’ 자연스레 생각하게 되었고 어느 순간 다시 연장전에 와 있더라고요.!
연장에서 또 우승을 해요. 그래서 재기를 하게 되죠!
약 2년의 슬럼프를 겪은 뒤 2006년 연장선에서 ‘마술에 가까운 플레이’를 선보이며 첫 LPGA 우승을 안겨줬던 <맥도날드 챔피언십>에서 다시 한번 우승하며 연장전 6전 6승의 기록을 세운다.
▷ 2016년 25년차 국민 영웅의 은퇴
은퇴식을 3년 전부터 준비하셨다고 그래요?
2013년 시즌이 끝나갈 무렵부터 편하게 3년이란 시간을 두고 하나씩 정리하는 게 좋지 않을까?
첫해는 은퇴에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 같아요.
2년째에도 ‘아직 한참 남았네’ 실감하지 못했다가
마지막 경기 딱 서는 순간부터 시작됐던 것 같아요. 눈에 눈물이...
‘아 오늘이 진짜 마지막이구나...’
눈물이 그렁그렁해서 나가야 되는데 멈추지를 않는 거예요.
그리고 갤러리 분들과 마미작으로 같이 걸은 게 기억에 남아요.
같이 걷는 것도 오늘 이 시간이 마지막이니까
한걸음 한걸음이 24년의 선수 생활을 떠올리는 걸음이었어요.
은퇴하면서 가장 아쉬운 게 뭐냐고 하면
팬분들이 경기장에서 환호 해주시는 것을 이제 더 이상 들을 수 없다는 거
▷ 골프에도 존재하는 ‘세리 키즈’
2016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되어 116년 만에 부활한 여자 골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딴다.
제가 선수 대의 기쁨, 감정보다 그 때가 최고였던 것 같아요.
▷ 박세리에게 골프란?
골프가 곧 박세리!
제가 제 개인적인 꿈을 위해 시작했던.... 꿈을 이루고자 시작했던 저의 꿈이잖아요.
근데 너무 순간 제 꿈이 누군가의 꿈이 되는 순간부터 많이 달라졌어요.
그러면서 ‘후배들이 꿈을 꿀 수 있게 환경을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아시아 주니어 대회를 아니카 소렌스탐하고 같이 주최해요.
◉ [유퀴즈 문제2]
이것은 조선 시대 관리들이 외출할 때 앞에서 길을 인도하던 사람을 부르던 말에서 유래됐는데요. 오늘날에는 나아갈 방향이나 목적을 실현하도록 이끌어주는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쓰입니다. 흔히 스승을 인생의 이것이라고 표현하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길잡이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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