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7. 26. 18:50ㆍ정보 공유/퀴즈 모음
오늘은 유퀴즈 온 더 블럭 198화 미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 정우철 3번째 유퀴저님의 이야기를 가지고 왔습니다. .
뭉크 <절규>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
박수근 <빨래터>
유명한 그림 하지만 모르는 이야기
명화 속 숨은 이야기 속으로
1. 유 퀴즈 온 더 블럭 198화 러브 다이브 특집 (230614) - 도슨트계의 아이돌 정우철
화가의 삶과 작품의 아름다움을 곱씹어서
미술과 사랑에 빠지게 만드는 그림 읽어주는 남자
도슨트계의 아이돌 정우철
(3) 이것은 원래 불교에서 불상을 만들거나 불화를 그릴 때 마지막으로 눈동자를 그려 넣는 의식을 뜻하는 말입니다. 미완성된 불화에 눈동자를 그림으로써 온전한 작품이 완성되는 것인데요. 오늘날에는 ‘그동안 몰랐던 사실이나 진리를 깨우친다.’라는 뜻으로 쓰이는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개안
※ 도슨트라는 게 전시 해설가
※ 큐레이터랑은 다른 건가요?
큐레이터 : 전시를 기획하고 만드는 입장
도슨트 : 기획된 전시를 공부해 해설
제가 개인적으로 쉽게 이야기하면 그림을 처음 보러 오시는 분들을 위해 화가와 관람객을 소개시켜주는 소개팅 주선자라고 표현합니다.
※ 박수근 - 빨래터 (1954)
저게 한때 화제가 됐었던 게 대한민국에서 최고가를 찍었어요.
2007년 박수근 ‘빨래터’ 45억 2천만원 국내 경매 최고가로 그 당시에는 최고가였습니다.
지금은 김환기의 <우주>가 132억으로 최고가입니다.
박수근 (1914~1965)
서민들의 삶과 애환을 표현한 가장 한국적인 화가. 시장, 농촌의 모습 등 평범한 민중의 모습을 담아냄. 일제 강점기와 한국 전쟁을 겪으면서 가난한 서민들의 삶을 그림으로 표현함.
빨래터를 많이 그리시는데 이유가 박수근 화백의 아내 김복순 여사를 처음 만난 곳이 빨래터입니다. 화가들한테는 사랑이라는 감정이 되게 크거든요. 빨래터에서 처음 마나고 그때 생각했대요. “결혼을 해야겠다. 이분과“ 그런데 박수근 화백은 어릴 때는 잘 살았는데 아버지 사업이 잘 안되면서 집안이 기울고 어머니가 병으로 세상을 떠났거든요. 보통학교 지금으로 치면 초등학교까지만 나와 독학으로 그림을 그릴 수 밖에 없었어요. 근데 반대로 김복순 여사의 집안은 부유했어요. 그래서 김복순 여사의 부모님은 박수근 화백을 인정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김복순 여사가 다른 잘사는 남자와 혼인이 잡힌 거예요. 그때 병에 걸려서 드러누웠답니다. 그래서 박수근 아버지가 찾아가서 김복순 여사 아버님한테 막 따졌대요. ”우리 아들 살려내라. 우리 아들보다 당신 딸을 좋아할 사람이 있을 것 같냐?“라고 했는데 결국 설득이 돼서 결혼에 성공을 했어요. ”너도 이만큼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는 게 좋겠다.“라고 하시면서 허락하셨대요. 근데 박수근 화백이 순수한 게 아버지가 돌아오셔서 잘됐다고 하니까 벌떡 일어나 밥부터 먹었데요. 근데 또 밥도 오랜만에 많이 먹어서 체하는 바람에 다시 몸저누우셨데요.
양구군립 박수근 미술관
주소 : 강원 양구군 양구읍 박수근로 265-15
박수근 화백이랑 김복순 여사의 묘도 같이 있어요.
박수근 화백의 동상이 있는 어디를 보고 있어요.
동상 앞에 있는 냇가 즉 빨래터를 바라보고 있어요.
그리고 또 재미있는 게 박수근 화백이 그림을 그릴 때 인물을 디테일하게 묘사를 안 해요.
특정 누군가가 아닌 힘든 시대를 살았던 모든 사람의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그냥 나무가 아닌 고목들을 많이 그리시고
고목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나목(가지만 남은 나무)인 거죠.
한국 전쟁이라는 겨울 속 힘든 시대를 살고 있지만 봄이 오면 꽃이 필 수 있는 나목
그 당시에 그림이 잘 안 팔려서 생계유지를 위해 미군 PX에서 미군들 그림을 그려주었어요.
정규직으로 미군들 그림 호객을 했던 누군가가 비정규직인 박수근 화백을 무시했대요.
서울대를 나와 미군을 호객해야 하는 아픔이 있었던 누군가 부모님도 세상을 일찍 떠나시고 나만 불행한 게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사람이 겪고 있던 고통이었던 거죠. 처음에는 박수근 화백이 못마땅했으니 우직함, 포기하지 않고 친절한 모습에 이 사람이 변화가 와요.
박수근 화백을 지켜보면서 나의 아픔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볼 수 있게 된 거죠.
그분이 박수근 화백이 떠나고 전시에 갔다 감동을 받았데요.
그게 바로 박완서 작가 <나목>입니다.
박완서 (1931~2011)
한국의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소설가로 <나목>으로 데뷔하였다.
미치고 환장하지 않으면 견뎌낼 수 없었던 1.4 후퇴 후의 암담한 불안의 시기를 미치지도, 환장하지도, 술에 취하지도 않고 화필도 놓지 않고, 가족 부양도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 살았나
지극히 예술가답지 않은 한 예술가의 삶의 모습을 증언하고 싶은 생각을 단념할 수는 없었다.
- 박완서 <나목> 서문 中 -
※ 빈센트 반 고흐 (1853 ~ 1890 / 네델란드)
인상주의 대표하는 화가로 서양 미술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손꼽히는 인물
별이 빛나는 밤 (1889)
안타까운 게 생전에는 알려지지 못한 고흐의 작품들.
살아 생전에 딱 한점 팔았어요.
정말 다행인 게 동생 테오에 의해서 생계를 유지를 할 수 있어요.
<별이 빛나는 밤>을 그릴 당시 가장 힘겨운 시절을 겪었던 고흐가 정신병동에 들어가서 그린 그림이에요.
<자화상>을 그린게 그게 문제가 돼서 정신병동에 입원을 한 거예요.
고갱과 같이 살았던 고흐
폴 고갱 (1848~1903 / 프랑스)
후기인상주의 화가로 고흐가 신뢰한 인물이기도 하다. 타히티섬의 원시적 자연에서 영향을 받은 작품들을 남겼다.
고흐는 예술가 공동체를 만들고 싶었어요. 노란집에서 화가들이 다 같이 그림을 그리고 수익이 생기면 다 같이 분배해서 먹고 살 수 있게 만들려고 했어요.
근데 고갱이라고 해서 착한 고흐 나쁜 고갱이라고 불러요.
고갱은 계산적이었고 고흐는 감성적이었어요.
개성이 너무 달라서 늘 부딪혔는데 어느 날 엄청 싸우고 고흐가 면도칼을 들고 와 고갱이 보는 앞에서 자신의 귀를 잘라요. 그때 고갱은 충격 받아서 신고를 하고 떠나고 고흐는 정신병원에 입원을 해요.
그때 고흐가 정신병원에서 밤하늘을 보면서 그린 그림이 <별이 빛나는 밤>입니다.
실제로 고흐에게 “왜 저렇게 별을 크게 그리냐?”고 물으니까 “내 눈에는 별이 저렇게 보인다.”라고 그리고 “밤하늘의 별을 보고 있으면 난 항상 꿈을 꾸게 된다.”라고 대답을 했데요.
그래서 항상 꿈을 꿨던 고흐의 그림엔 슬픔보단 미래에 대한 희망이 보인다.
이 그림에서 희망이 느껴지는 포인트가 뭐냐면 그림에 뭔가 없어요. 고흐가 지운 게 있어요. 정신병동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창살을 지웠어요. 분명 보였을 창살을 그리지 않았어요.
나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더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지며 그린 그림 같아요.
하지만 결국 스스로 안 좋은 선택을 한 반 고흐... 여러 이유가 있지만 항상 본인을 지원해준 동생 테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 있었을 거예요.
편지를 보면 “나를 먹여 살리느라 너는 늘 가난하게 지냈겠지?”, “힘들어지면 얘기해라 바로 유화를 그만두겠다.”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테오가 자식이 생기고 하던 일도 어려워지자 죄책감이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마지막 그림인 <까마귀가 나는 밀밭>을 그리고 안 좋은 선택을 했어요.
※ 에드바르트 뭉크 (1863~1944 / 노르웨이)
표현주의 화가로 주로 삶과 죽음, 고독과 불안 같은 인간의 감정을 표현한 게 특징
에드바르트 뭉크 <절규>
<절규>에 대한 오해부터 풀어드리면 주인공이 소리를 지른다고 생각하는데 “자연의 비명 소리가 끝도 없이 들려서 그게 너무 무서워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즉 뭉크의 절규가 아닌 자연의 절규입니다.
그리고 뭉크가 <절규>를 그린 게 생각보다 어려요. 29세에 그렸어요.
저는 생각했는데 29세에 저런 걸 그릴 정도면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궁금했어요.
찾아보니까 어릴 때 어머니가 폐결핵으로 돌아가셨어요.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해 주던 누나도 몇 년 뒤에 똑같은 병으로 세상을 떠나요. 그런데 그 와중에 아버지가 아내가 죽고 나서 광신도 같은 믿음이 생겨요. 그래서 안 그래도 힘든 애를 정신적으로 학대를 했대요.
꿈에 어머니가 피를 흘리면서 나타나는데 정말 힘들었데요.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뭉크가 견딜 수 있었던 이유는 순간적으로 우울증이 오면 그때 그림을 그려야 하는 거예요. 끓어오르는 감정을 그림으로 쏟아내면 살 수가 있는 거예요.
그렇게 화가가 되었다가 어느 날 친구들과 저 다리를 건너고 있는데 그날따라 붉은 노을이 새빨갰대요. 보통 예쁘게 느낄 붉은 노을인데 뭉크 입장에선 “마치 하늘에서 피가 쏟아지는 것 같더라.”라면서 “자연의 알 수 없는 비명소리를 들어서 너무나 무서워서 움직일 수가 없었다.“라고 그래서 귀를 막고 있는 거예요. 집에 돌아와서 그린 그림이 절규인데 자세히 보시면 내 내면과 자연에 해당하는 것만 요동쳐요. 인공적인 다리는 쭉 뻗어있고 친구도 가만히 있잖아요. 그리고 사선 구도가 불안함을 상징해요.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게 우리는 다들 <절규>만 알지만 뭉크가 80세까지 살았어요. <절규>가 극초기작이라는 겁니다. 뭉크는 <절규>로 끝나는 화가가 아니예요.
태양
이렇게 밝게 빛나는 태양을 처음 본 거예요. 저는 뭉크 작품이라고 생각을 못 했어요.
무슨 일이 있었냐면 정신변동에 들어가요. 그런데 정신병동에 있었던 다른 화가 반 고흐를 알게 된 거예요. 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뭉크가 무엇을 느꼈냐면 “나는 항상 죽음, 슬픔만 얘기하고 고통만 외치고 있었는데 고흐는 나보다 더 힘든 삶을 산 것 같은데 어떻게 그림 속에 희망이 들어있을까?”하고 그 때 뭉크가 바뀝니다. “나도 희망을 그려야겠다.”라고 그리고 태양 저 그림이 사실은 노르웨이 오슬로 국립대학에 있는 벽화입니다.
오슬로 대학에서 의뢰가 들어와서 대학생들이 볼 희망의 그림을 그린 겁니다.
뭉크는 나같이 힘들게 산 사람도 계속 싸우고 있었고 포기하지 않았다. 물론 뭉크는 우울증, 대인기피증이 낫지는 않았어요.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변화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했어요. 그리고 저 그림이 노르웨이 화폐에 들어가 있어요.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 : 프랑스 근대 회화를 주로 전시
그리고 이 미술관에는 클로드 모네의 수련(1914~1926)이 있습니다.
클로드 모네 (1840~1926 / 프랑스)
인상주의를 개척한 화가로 빛에 의해 시시각각 변하는 색을 표현한 게 특징
인상이란 건 찰나를 의미하는데 순간순간 변화하는 빛의 인상을 빠르게 포착한 게 인상파.
외부의 인상을 그린 인상파와 내면의 감정을 표현하는 표현주의
똑같은 풍경을 봐도 시간마다 다른 풍경 그걸 포착해서 그리는 거예요.
저 미술관을 왜 꼭 가보라고 하냐면 좀 독특해요.
그림을 비추는 조명이 하나도 없어요.
천장이 뚫려 있어서 자연광이 그림을 비추는 곳이에요.
그래서 미술관에 가는 날의 날씨에 따라 달라져요.
또 하나가 그림이 휘어 있어요.
곡선의 <수련> 그림이 완전히 나를 감싸는 느낌이 들어요.
왜 저렇게 했냐면 프랑스 사람들이 예술에 진심이구나 느낀 게 모네가 “이 수련은 내가 봤던 것처럼 자연광으로 보게 해라. 그리고 사람들이 마음의 평화를 얻고 명상을 위한 쉼터가 됐으면 좋겠다. ” 그래서 저기는 조용해요. 조금이라도 시끄러우면 바로 잡아요.
모네가 부탁했으니까! 그거를 지금까지도 지켜주는 곳이에요.
※ 우리나라에 있는 추천 미술관은?
양주 시립 장욱진 미술관
경기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 193
화가 그림이 단순하고 예뻐서 어린아이들도 좋아해요.
그리고 공원, 냇가가 있어 가족이 놀러가기 딱 좋아요.
※ 도슨트님을 위로하는 작가, 그림이 있습니까?
마르크 샤갈 (1887~1985 /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 꿈의 꽃다발 (1964)
색체의 마술사로 불리며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화가로 손꼽힘
꿈의 꽃다발은 프랑스 파리 오페라 가르니에 극장 천장에 그린 천장화이에요.
저분이 양차 대전을 다 겪었어요. 유대인으로 유대인 학살도 겪었고 모든 전란의 시대를 살면서 그림이 어두워질 법한데 저분의 그림의 계속 밝아요.
샤갈이 꽃다발을 그리는 이유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 ‘꽃다발’이라고 해요. 샤갈이 한 세기를 살면서 그림이 어두워지지 않은 이유가 “누군가는 이 세상이 힘들수록 사랑을 전해줘야 하는데 그 사랑을 전하는 건 예술가의 역할이다.” 본인의 평생 역할이었던거죠. 그러다 오페라 가르니에 천장화를 맡게 됐는데 저걸 그리고 “이게 내 인생 최고의 역작이다.”라고 말했다고 해요. 저기 규모가 엄청나게 커요.
샤갈은 양차대전 다 겪고 유대인 학살에 차별에다가 그리고 샤갈도 부인을 잃었어요. 그러면 얼마나 삶이 힘들어요. 그런데 이분은 “삶이 언젠가 끝나는 것이라면 삶을 사랑과 희망의 색으로 칠해야 한다.”라고 해요. 화가들이 남긴 말들이 되게 솔직하고 진솔하고 울림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저는 화가의 그림을 보는 것도 좋지만 그 화가가 남긴 말을 항상 같이 들려줘요. 그게 위로가 돼요.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도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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