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9만에 빛은 본 대기만성형 40대 소년미를 가진 배우 유태오

2024. 4. 21. 20:56정보 공유/드라마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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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유퀴즈 234회 배우 유태오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2024.1.23. 96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후보 발표

<기생충> <미나리> 이후 세 번째 오스카 노미네이트

한국 배우 최초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패스트 라이브즈> 작가 겸 감독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

한국 배우 유태오

그들이 만든 영화가 전 세계를 뒤흔들었다!!

그 현장의 중심에 있는 유태오.

 

▶ 첫 번째 유퀴저 : 유태오

 

※ 배우 유태오

고현정 독일에서 태어났고 뉴욕에서 배우 하다가 한국으로 왔어요. 일하려고

 

한국으로 와 수많은 단역을 거쳐 한국 배우 초 러시아 영화 <레토> 주연으로 칸

<패스트 라이브즈> 한국 배우 최초 영국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

데뷔 19년 만에 빛을 본 대기만성형 배우

하지만 얼굴에 고생이 전혀 보이지 않는 40대 소년미를 가진 배우이자

세기의 사랑으로 떠들썩했던 11세 연하 남편

 

 

※ 태오가 출연한 영화 <패스트 라이브즈>

인연에 관련된 이야기

어린 시절 첫 사랑이었던 두 친구가 12살 때 헤어진 후 다시 만나는 이야기

전혀 모르는 사람 둘이 길을 걷다가 우연히 옷깃만 스쳐도 8천겁의 인연이 쌓였다는 뜻이거든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전 세계 217개 부문 노미네이트, 전 세계 76관왕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중, 오스카 시상식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까지!!

 

 

※ <패스트 라이브즈> 셀린 송 감독

<넘버3>의 송능한 감독의 딸!

아버지는 데뷔와 동시에 충무로이 천재 감독으로!

딸도 데뷔와 동시에 전 세계 76관왕을!!

영화에 셀린 송 감독님의 자전적 이야기도 들어갔다고

 

 

※ 셀린 송 감독님은 어떤 분이신지?

자기 주관과 비전이 확고한 분.

데뷔작임에도 불구하고 베테랑 같은 자신감이 있는

 

※ 셀린 송 <패스트 라이브즈> 감독

12살까지 한국에서 살면서 인연이라는 단어를 알고 사는 것이 인생에 깊이를 더해준다고 생각했거든요. 그걸 알면 내 인생에 모든 사람들이 의미 있게 되니까

그래서 한국 바깥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단어에 대해 얘기하고 싶었어요.

이제는 이탈리아 사람들이 이탈리아 악센트로 인연이라 말하고 체코에서도 체코 발음으로 듣고 그래요.

 

Q. 한국 영화의 위상이 달라지게 된 계기?

저는 <기생충>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기생충>이 자막에 대한 인식을 바꿨어요.

<기생충> 전에는 ... 자막 있는 영화다 괜찮을까?”

<기생충> 후에는 자막 있는 영화다! 신난다 좋다!!”로 바뀐 것 같아요.

그 덕에 한국 영화의 위상이 높아졌다고 생각해요.

 

 

※ 유태오 부모님이 이민을 가신 건지?

아버지는 광부였고요. 어머니는 간호사였어요. (파독 광부와 파독 간호사)

 

유재석 : 1970년대 독일로 파견되어 고생을 많이 하셨던... 독일에서 두분이 만나신 겁니까?

 

. 독일에서 매해 우리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8.15 행사나 한인들이 모이는 행사에서 엄마가 배구하는 뒷모습을 보고 반했대요. 엄마를 만나러 가려고 하는데 그 당시에 기차 티켓이 엄청 비쌌거든요. 거의 한달 월급 정도 그 돈을 벌려고 보통 한 타임이 12시간인데 2주간 더블로 일을 하셨대요. 햇빛을 안 보고 24시간 동안 밑에서 흙을 캐면서 돈을 모아서 기차표를 사서 엄마를 보러 가려고 일을 했었다고 얘기 들었어요.

 

유재석 : 부모님께서 현지에서 지내려면 고생을 많이 하셨을텐데?

 

1970년도 후반에 탄광 문 닫고 나서 우리나라 분들이 독일에서 뿌리내리고 살려고 해서 케밥집을 열었어요. 가게를 키워 5년 뒤에 금은방을 열었고 또 5년 동안 벨기에를 다니며 금을 볼 수 있는 자격증을 따셨어요. 그러다가 금은방에 강도가 와서 시골로 내려갔어요.

시골에서 했던 마지막 사업은 호텔로 수년간 모은 돈으로 라인강 강변에 조그마한 호텔을 만드셨어요.

 

※ 호텔에 특별한 손님이 많이 오셨다고?

저희 아버지가 축구를 너무 좋아하셨거든요. 1970년도 초반에 우리나라에 아마추어 리그만 있었어요. 우리가 독일에 있는 동안 프로 리그가 생겼는데 1990년대는 독일이 대세였어요. 분데스리가가.. 한국 선수들을 우리한테 보내기 시작한 거죠. 트레이닝 개념으로 독일 휴학을 보냈던 거죠. 호텔에서 제가 됐던 선수들은 삼촌 삼촌하면서 지냈는데

 

 

※ 이때쯤 정체성에 관한 고민이 생겼다고?

그때까지 저는 그냥 순진한 꼬맹이였는데 12살이 넘어가니까 아시아인인 거예요.

 

유재석 : 사실 90년대 80년대의 우리 대한민국과 지금의 대한민국은 국제적으로도 그렇고 엄청난 차이가 있죠.

 

일단은 중국인이냐 일본인이냐 먼저 물어봐요. 한국이 어디인지도 몰라요. 지금하곤 너무 다르죠.

저는 애초에 태어난 장소가 인정을 받지 못하는 곳이었으니까.

우리 집안에서 먹었던 음식들에 항상 김치가 포함됐었거든요.

그런데 그 냄새가 이상하다고 구박당하고 놀림당하고 그랬었거든요.

친구들뿐만 아니라 선생님까지도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곳에서 사는 건 언제나 불안했다.

나를 인정해달라는 외침제 마음속에 항상 있는 것 같아요.

 

 

※ 뉴욕에서 운명의 인연을 만나다.

그 당시에 연기 공부를 하며 식당 매니저로 일하고 있었어요. 식당 앞에서 잠깐 쉬러 나왔는데 저 뒤에서 어떤 귀여운 여자가 보이는 거예요. 귀여우니까 폼을 잡고 최대한 멋있는 자세를 장착하고 쳐다봤는데 계속 쳐다보고 있는 거예요. 서로 계속 쳐다보다가 뭐지?” 하고 그냥 헤어졌어요. 그리고 두 시간 뒤에 식당 앞으로 와서 가게를 막 쳐다보고 있더라고요.

외국 분이랑 같이 들어오더라고요. 일행과 함께 셋이 바에서 대화하던 중 니키가 일 끝나고 오늘 밤 저희 집에 오실래요?”라고 알고 보니 니키는 3일 뒤에 한국 가야 했던 거예요.

한달 뒤에 돌아오면 더 이상 싱글남 아닐 수도 있고 모르잖아요. 그냥 그 자리에서 이야기한거라고

 

유재석 : 그때 뭐라고 얘기하셨습니까?

 

빨리 얘기하라고 외우겠다고 주소를... 저도 정말 처음이였어요.

항상 지나가면서 2층을 봤던 집이 있었는데 너무 예쁜 샹들리에가 있었어요.

참 아늑해 보인다. 저긴 누가 살고 있을까?’라고 생각 했던 집에 니키 집이였던 거죠.

집에 가서 잠깐만! 얘기를 많이 못 나눴으니까 앉아봐!” 진짜 너디한 질문을 했어요.

예술도 좋아하고 영화 좋아한다고 하지 않았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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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영화 어떤 영화를 제일 좋아하는지 한 3개만 얘기해달라.

취향 안 맞으면 나가려고 했어요.

플란다스의 개를 말하는데 그 당시에 제일 좋아했던 영화였거든요.

그 얘기를 하면서 관계가 풀렸죠. 해뜰 때까지 영화 얘기만 했어요.

한국 가기 전 3일 동안 매일 봤어요.

니키는 그때도 한국에 있는 친구들한테 결혼할 남자를 만난 것 같다 라고 말했다고

 

※ 빨리 성공해야겠다는 조바심이 나지는 않았는지?

오랫동안 무명 시절이다 보니까 2016년도, 2017년도에 통장에 0원도 떠본 적이 있어요.

니키의 작업들로 잘 메꿀 수는 있었지만 제가 그때 너무 미안해서 영원히 나는 돈 못 버는 배우일 수도 있어 라고 했는데 니키는 그냥 편하게 당연하지. 여보가 힘들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지만 우리 열심히 하자!”

제가 한참 돈 못 벌었을 대 같이 마트에 장 보러 갔는데 마트에 산더미처럼 쌓여있던 신발들이 있어요. 거기에서 신발들을 고르면서 보다가 내려놓고 그 2만원이 아까우니까

또 포도를 들었다가 내려놓는 모습들.. 너무 미안했죠.

다시는 그렇게 안 되게 만들려고 정말 열심히 할 거예요.

 

 

※ 뉴욕에서 연기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와 배우 활동을 시작하면서 처음에는 언어적인 부분 때문에 어려움을 겪으셨다고?

우리나라 말을 편하게 쓸 수 있던 상황이 아니었어요.

맥락으로 대충 이해만 가능했던 시기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어요.

연기할 때 우리나라 말 하는데 진짜내 목소리를 내야한다.고 하는데

저는 그때까지 계속 한국인흉내를 냈던 것 같아요.

그걸 깨닫고 흉내만 내지 말고 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아나운서 학원도 다녀본 적 있었고 채소 가게에서도 일을 하면서 멘트를 준비해야 되거든요.

막 소리 지르면서 왜 채소가 맛있는지 ㅎㅎ

그렇게 하면 한국 문화와 말을 빨리 배울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어요.

새벽 5시에 본사에 가서 안녕하십니까 누구누구입니다하고 새벽 6시에 담당 지점으로 파견을 가서 아침 7시부터 저녁 7시까지 12시간을 일했어요.

박스 위에 서서 더 높게 서서 외치면 사람들이 집중하잖아요.

사실 제가 엄청 수줍어하고 내성적인 성격인데 이런 경험을 통해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는 연습을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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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년 만의 신인상, 어떠셨는지?

신인상이라는 명칭을 떠나서 그냥 우리나라에서 인정받았다는 게 저는 너무 좋았었죠.

제가 고생했던 이야기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거든요.

니키가 저한테 하는 얘기가 고생한 거에 비해서 얼굴이 참 고생 안 한 것처럼 보인다고..

그런데 진짜 제가 참 고생했던 순간들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고마웠던 인정이었죠.

다국적인 문화에서 자라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래도 피는 한국 사람인데... 좋았죠.

 

※ 태오에게 니키리는 어떤 존재?

언어가 모자를 만큼.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한 영혼을 둘로 나눈 사이

니키를 안 만났으면 러시아에서 피에로가 되려 했었어요.

서른 다섯 이후에 제 인생이 안 보였거든요.

니키가 저를 만들어 준 거예요.

 

 

[유퀴즈 문제1]

세계적인 대문호 괴테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독일 문학의 걸작으로 불리는데요.

나폴레옹이 프랑스 혁명 당시 전쟁터를 가지고 갈 정도로 애독했다는 이 작품은 무엇일까요?

 

[정답]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Die Leiden des jungen Werthers)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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