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7. 14:19ㆍ정보 공유/드라마영화
오늘은 유퀴즈 247회 임요환님 VS 홍진호님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e-스포츠를 이끈 최고의 라이벌이 있었다.
20년 동안 이어진 임요환 VS 홍진호
“임진록”
2024 유퀴즈배 임진록을 시작~~ 하겠습니다.!!
e-스포츠의 근본이자 역사 황제 임요환
임요환의 최대 라이벌이자 또 다른 전설 홍진호
e-Sports의 아버지이자 ‘테란의 황제’
2005년 당시 팬카페 수 2위 (62만명)
각종 광고뿐만 아니라 ‘나만큼 미쳐봐’ 출판되자마자 베스트 셀러.
한 시대의 아이콘 임요환
황제의 유일무이한 라이벌이자 2의 아이콘
“1등만 깅거하고 2등은 기억하지 않는 세상이라지만 2등도 많이 하면 기억할 수 있다는 걸 알렸고..”
이제는 1위에 등극한 e-Sports의 전설 홍진호
▶ 두 번째 유퀴저 : 임요환 & 홍진호
▣ 숙명의 라이벌로 불리는 서로의 첫인상?
임요환 : 제가 기억하는 진호는 순박한 시골 청년. 살도 통통하고 여드름도 조금있는...
홍진호 : 요환이 형은 지금이랑 크게 변한 게 없어요. 게이머들이 당시에 대체로 꾀죄죄했거든요. 그런데 요환이 형은 워낙 이미지 자체가 깔끔하고 씻는 걸 정말 좋아하고 그래서 첫인상은 진짜 깔끔했는데 근데 게이머들 사이에 퍼지는 소문은 깔끔하진 않았죠. 게임을 얍삽하게 한다든가!!!
조세호 : 그러면 본인은 게임이 깔끔한 편입니까?
홍진호 : 저는 굉자히 깔끔한 편이죠.
조세호 : 깔끔하게 패배하는 스타일?
홍진호 :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더라도 시원하게 싸우고
▣ 승패는 근소하게 3승 차이로 요환 승인데? 67번이나 했지단 단 3승 차이
임요환 : 승패가 거의 팽팽함에도 불구하고 2인자 진호의 이미지가 생겨난 이유는 제가 준비를 많이 해야 하는 높은 무대에서 제가 많이 이겼어요. 예선이나 준비를 덜하고 붙어도 되는 곳에서는 그런 건 진호가 많이 이겼어요.
유재석 : 아니... 진호씨가 속이 뒤집어질 만하게 얘기를 하시네. 똑같은 이야기도 들어보면 뭐가 있어요.
홍진호 : 가시가 있어요. 대화 속에..... 맞는 말이긴 한데...
유재석 : 큰 대회는 약하지만 작은 이벤트 대회에는 강한.... 어떤 분이 댓글에 “홍진호가 이벤트전에 강한 이유는 2벤트전이라서”라고
▣ 67번의 임진록 중 가장 많이 회자되는 ‘3연벙’이라고 ‘3연벙’이 뭡니까?
3연벙 : ‘벙커링’이라는 전략을 3번 연속 썼다.
벙커 : 유닛이 안에 들어가 공격할 수 있는 건물 주로 방어용으로 쓰임
방어용인 벙커를 공격에 활용하여 허를 찌르는 전략 ‘벙커링’
적진 안에 기지를 세우므로 ‘모 아니면 도’ 전략
임요환 : 5판 3선 경기에서 3연속 벙커링으로 승리했어요. 경기 시간이 최소 1시간 이상인데 이 경기는 30분도 안 돼서 끝났어요. 많은 분들이 기대한 매치였는데 치킨을 시켰는데 치킨이 오기 전에 경기가 끝나버린
홍진호 : 말이 많았죠. “이 경기가 이렇게 끝나는 게 맞냐?“ 진 사람도 혼나고 요환이 형도 욕듣고
임요환 : 이긴 사람도 진 사람도 모두가 죄인이 된 경기였어요.
유재석 : 3연벙 패배 이후 너무 분한 나머지 숙소에서 나와서 소주 병나발을 하고 이후 팬카페에 들어갔더니 위로 받으러 들어간 팬카페에서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고
이후 상당한 슬럼프를 겪였다고?
홍진호 : 당시 그 경기의 패배가 굉장히 충격이었어요. 준비한 것들을 하나도 보여주지 못하고 끝나버린 그래서 게이머로서 슬럼프가 왔거든요. 1년 동안 모든 대회에서 다 떨어지고 그런 힘든 시기가 있었죠.
임요환 : 진호가 이렇게 괴로워한 것도 몰랐어요. 제가 그때 나이가 25살, 게이머로서 나이가 찬 상황에서 다시는 결승전을 올라가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영혼까지 팔아서 승리를 위해 만든 전략이었어요. 그렇게까지 해서 이겨놓고 올라가서 결승에서 졌어요. 제 제자라고 불리는 친구랑 결승전을 치렀음에도 축하를 못 해주고 그냥 울었어요.
홍진호 : 저도 직관했거든요. 집에서 TV를 보면서 나를 그렇게 이겨놓고 ‘얼마나 잘하나 보자’ 지고 나서 우는 것 보고 “브라보” 저러려고 올라간 거야!!!
임요환 : 너는 그래도 돼!
홍진호 : 저도 억울했거든요.
유재석 : 임요환씨도 팬들의 기대를 알고 있음에도 승리가 더욱 절실했던 왜냐면 프로게이머로서 나이가!!
임요환 : 나라의 부름이 코앞이니까 군대를 다녀온 뒤에는 기량이 줄어들 것을 알기에 진호는 피해자예요 피해자..
▣ 임요환씨가 국내 프로게이머 중에 최초로 연봉이 1억원이라고?
유재석 : 1억이라는 금액이 지금과는 달라요. 무려 23년 전 억대 연봉. 이때만 하더라도 게임에 대한 시각이 굉장히 부정적이었던 게임하면 뭐가 나오냐 밥이 나오냐 돈이 나오냐 했던 실제로 그렇게 얘기했던 사람들에게 프로게이머가 무엇인지를 보여준 두 사람
▣ 1년 후에 억대 연봉을 거절했다고?
개인 후원 금액 외의 지원금으로 10명 정도의 팀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다시 요환만 계약하기를 원했던 팀.. 하지만 그렇게 되면 팀원들은 별다른 지원 없이 버텨야만 하는 상황이라서 “안 되겠다 싶더라고요” 모두에게 동기부여도 안되는 상황이라서 그래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해서 개인팀을 만들자 한거죠
팀 ‘4U'를 사비로 창단한다.
▣ 6개월 이상 사비로 팀을 운영하다가 통장 잔고가 천만원도 안 남았을 때 기적적으로 SKT에서 연락이?
“SKT, 임요환 등 영입 프로게임단 'T1' 창단"
그렇게 시작된 T1이 어느덧 20주년 LoL 역사상 최강팀
유재석 : 요환씨와 페이커의 만남을 "T1 창조주와 구단주의 만남이다“라고
임요환 : 많이들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항상 페이커한테 너 구단주라며? 지분은 얼마나 있니? 가끔 사적으로도 만나긴 하는데 “이 친구를 보다 보면 제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요” 순수하게 게임에만 몰두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것 같아요. 많은 프로게이머한테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곤 하거든요. 이 친구한테는 할 말이 없어요. 나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고 나보다 더 자신을 채찍질해가며 노력하는 모습이 보이니까 ‘이 친구한테 무슨 조언을 하지?’ 지금도 너무 올바르고 멋진데 그래서 “T1과 e-스포츠가 올바른 길로 가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어요.
페이커 : 아무래도 e-스포츠가 성장할 수 있었던 게 임요환 선배님이 기틀을 많이 다져놨고 또 T1 만든 단군신화도 들어봤을 때 되게 감동적이기도 하고 그런 역사로 인해 더욱 빠르게 발전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서 원시 시대(?)부터 열심히 활동하시던 임요환 선배님부터 시작해서 저도 현대 시대에 살고 있는 이상혁이 된 것 같아서 저도 그런 부분에 영향을 받고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유재석 : 페이커 만나본 적 있어요? 홍진호씨는?
홍진호 : 예전에 같이 광고 한번 찍어가지고.... 페이커가 말 수가 없어서 제가 일단 한참 선배이다 보니까 저를 굉장히 조심스러워했던 거로 기억하고 저한테는 후배니까 “그냥 편하게 있어”하기도 하면서 그냥 재밌게 있었던 기억만 있습니다.
그때가 옛날이어서 지금처럼 대 페이커까지는 아니었어요.
지금은 거의 뭐 갓 페이커잖아요.
페이커 : 홍진호 선배님은 임요환 선배님한테 많이 패배한 ‘2인자’시라고 알려져 있는 것 같아요. 홍진호 선배님도 마찬가지로 e-스포츠의 기틀이 없었을 때 그때부터 저그의 틀을 다 닦으시고 지금까지도 e-스포츠에 대한 애정이 있으시니까 되게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25년차 캐스터 전용준 : 임요환 홍진호 선수가 아니었으면 말씀드린 것처럼 그들이 판을 만들어서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 왔거든요. 그게 어디까지 갔냐면 2022년 항저우 아시안 게임의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금메달까지... 사실은 게임 중계를 하면서 우리가 메달 수여하는 거 있지 않습니까? 공인된 세계인의 스포츠 대회에서 금메달을 받는다는 것!! 예전에는 “국가대표”라는 말을 못 썼어요. 국가대표는 대한체육협회에 공인된 스포츠 종목에만 쓸 수 있는 표현이라고 해서 저희는 “한국 대표”라고 했습니다. 근데 결국 e-스포츠도 스포츠가 됐고 아시안 게임 금메달까지.. 정식 종목이 되는 감격적인 순간까지 “그 모든 것의 시작에는 임요환, 홍진호 선수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생각합니다.”
▣ 임요환 프로 포커 플레이어 전향하게 되었다고?
임요환 : 선수 생활을 하다가 군대를 갔는데 군대 제대 후 기량이 많이 떨어지더라고요. 그래서 선수로써 은퇴를 했어요 그리고 코치의 길을 걷는데 제 마음속에서는 아직 선수로서의 피가 끓더라고요. 열정이 가득하고 남아 있는 팬들에게 아직 제 게임을 보여주고 싶고 하다 보니까 재미가 없은 거예요. 프로게이머 할 때 인터뷰를 가장 많이 한 내용인데 “임요환에서 게임을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게 현실로 온 거예요. 진짜 게임이 없어지니까 아무것도 할 게 없더라고요.
함께 선수 시절을 보낸 베르트랑 선수가 프로 포커 플레이어로 전향에서 프랑스의 국민 영웅이 되는 모습을 보고 포커가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되었죠.
홍진호 : 오랫동안 승부를 테마로 살아온 만큼 요환이 형이 데뷔하는 거를 보고 나도 하고 싶다. 그리고 저건 내가 더 잘할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이 들어서
▣ 이번 라스베이거스 대회는 어떤 대회예요?
세계에서 가장 큰 포커 토너먼트, 2024 WSOP 전체 일정 시작
세계 최고의 유명하고 권위 있는 대회
총 상금이 천문학적
100개 가까운 대회 중 메인 이벤트만 말씀드리자면 작년 1등 상금이 160억
▣ 나에게 홍진호란?
저는 진호가 없었으면 성공을 못 했을 것 같아요.
이렇게까지 성공하진 못했을 것 같아요.
진호라는 존재가 저한테는 너무 소중하고
일단 나는 네가 굉장히 큰 힘이 돼 나 혼자 포커를 시작했을 때보다 너랑 같이 하는 게 내 꿈의 2배로 더 빠르고 가까워지는 거 같거든. 이게 나는 너랑 나랑 어쩔 수 없이 평생 가야 되는 것 같아. 우리가 백발이 될 때까지 죽을 때까지 좋은 모습 보여주자
▣ 나에게 임요환이란?
저는 요환이 형이 없었으면 더 성공했을 것 같아요.
저는 확실히 더 성공했어요.
근데 뭐 요환이 형이 있어서 더 열심히 산 것 같습니다.
이게 저도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확실한 건 어쨌든 지금껏 제 삶에 있어서 임요환이라는 사람은 절대 빠질 수도 뺄 수도 없는 사람이라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내가 어떤 것에 도전하거나, 하고 있을 때 요환이 형이 있으면 더 열심히 할 것 같고 있었으면 좋겠고 뭐라 표현할 수는 없지만 동지 의식이 있는 거 같고 이번에 같이 베이거스 가잖아 형도 빨리 성적 잘 내서 포코 플레이어로서도 톱이 되는 모습 보여줘서 “역시 임요환은 임요환이다” 이런 말 들었으면 좋겠어.
◉ [유퀴즈 문제2]
제2차세계대전 당시 영국 총리였던 윈스턴 처칠은 연합군이 승리한다는 의미로 사진을 찍을 때 이 제스처를 자주 했습니다. 이후 이 사진이 각 나라의 신문 1면을 장식하며 승리와 영광을 상징하게 되었는데요.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브이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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