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는 낭만 닥터 WHO 본부 김록호 국장

2024. 3. 2. 21:24정보 공유/예능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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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유퀴즈 222WHO 본부 김록호 국장편을 가지고 왔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산재 사건을 해결하고

WHO(세계보건기구)로 가서 세계인의 건강을 지키는 낭만 닥터를 찾아서

 

전 세계 인류의 안녕을 위해 일하는 WHO 본부 김록호 국장

 

▶ 두 번째 유퀴저 : WHO 본부 김록호 국장

 

※ WHO (World Health Organization) 세계보건기구

WHO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음.

 

 

※ WHO에 근무하신 지는 얼마나 되셨나요?

20년 정도

 

※ WHO는 어떤 일을 하나요?

UN기구를 세계의 정부라 보면, WHO는 세계의 보건부라고 생각하시면 될 것 같아요

이번 코로나 19 사태처럼 국제적으로 대책을 세우지 않으면 큰일 나는 일들이 있단 말이에요.

국제적인 질병 대처를 담당합니다.

 

※ 국장으로 있는 WHO 과학부가 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WHO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각 국가를 설득해야 하는데 이때 가장 강력한 게 과학적 근거!

과학적 증거에 기반한 권고는 무시하기 어렵거든요.

WHO의 힘이 나오는 곳이 과학적 증거인데 저희 과학부가 하는 일은 WHO에서 만들어내는 권고 문서들이 최신의, 가장 좋은 과학적 증거에 기반했는지 검증하는 일을 맡고 있습니다.

 

※ WHO 근무 환경 어떤가요?

회원국 중 가장 높은 공무원 봉급 수준.

세계 여러 도시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같은 월급을 주면 불공평하잖아요.

저같이 스위스에 근무하는 경우에는 기본급의 80%를 더 줍니다.

국가별 물가 맞춤 추가 생활비가 지원됩니다.

국제기구이기 때문에 어떤 나라에 소속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세금을 낼 필요가 없죠.

노후 연금이 좋아요. 돈 버는 거 다 써도 됩니다. 은행에 저금할 거 없이!!!

 

유재석 : 단점은?

 

특히 한국같이 끈끈한 문화! 저는 20년 동안 떨어져 살았거든요.

동창회 한번 제대로 못 갔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그래요

 

 

※ 본부에 한국인 직원 많이 있나요?

20명 정도

 

조세호 : 마흔 넘어 입사하신 건지?

 

네 제가 마흔 넘어서 입사를 했죠. 45에 들어갔어요.

 

※ WHO에 들어가는 법

파견 근무 유형 - 보건복지부, 식약청, 질병관리청에서 2~3년정도 파견되어 와서 근무

공채 유형 - 대한민국은 UN 채용 시 1순위입니다.

대한민국이 세계 10위권 경제 대국이고 UN 기부금도 세계 10위권!

그에 비해 적은 UN 한국인 직원 수.

한국인이 지원할 경우에 인터뷰를 통과하고 특별히 떨어지지 않는 상황이면

WHO가 모범을 보여야 되기 때문에 흡연자는 안 뽑습니다.

 

※ 본부 구내식당에선 뭐가 나오나요?

샐러드 바가 중앙에 크게 있고 접시에 먹을 만큼 담고 무게를 측정해서 돈을 내요.

유럽에선 점심을 따뜻하게 먹어요. 그리고 채식주의자를 위한 비건 코너도 있고, 전체적으로 굉장히 건강합니다. 한국 돈으로 2~3만원 정도

 

조세호 : 스위스 물가가 비싼데 햄버거 가격은 얼마나 하나요?

 

햄버거가 25프랑이니까 대략 37천원 정도

 

지금은 WHO 국장이시지만 원래는 의사 선생님 이셨다고?

제가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해서 군대가 면제됐거든요.

3년 동안 가정의학과 수련을 받고 곧바로 개원을 했어요. 27살 정도였어요.

소아마비 자녀를 둔 부모님의 소원은 제발 의술이 발달해서 치료하고 싶단 거거든요.

어느 날 어버지 손에 이끌려 소아마비 치료가 가능하다는 병원에 찾아갔어요.

얼마가 듭니까?” 비용을 얘기하는데 수술비용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정도였어요.

손써보지도 못하고 집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잊고 싶을 만큼 깊었던 그날의 상처. 그때 몸소 느낀 가난으로 치료받지 못하는 부당함.

내가 의사가 되어서 나와 같은 사람들을 도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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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명한 의사 선생님이셨다고?

그때가 5공화국 시절

저는 의과대학 졸업하고 수련 받고 개원하는데 사회운동 민주화 운동 하는 그 친구들에 비하면 저는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는 것 아닐까? 그러면서 그들에게 뭔가 빚진 마음이 있었고요.

그 친구들이 전국 공단에 흩어져 있는데 그들을 위한 양호실이라 생각했어요.

그들에게 건강 문제가 생겼을 때 돈이 문제가 되면 안 되니까

찾아오는 이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어요.

 

※ 공장에서 일을 하다 다쳐서 찾아오는 이들이 많았다고?

당시 산업 재해율이 세계 1위였거든요. 어린 학생들이 일하던 중 사망하거나 감전 사고나 절단 사고를 당하기도 했어요. 치료만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고 법적 대처를 해야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고, 법적인 권리를 인정받도록 해야 하는데 고민이 많았죠. 의사의 범위를 벗어나는 거거든요. 제가 모르는 척 하기에는 나머지 그 많은 법적인 과정은 도움 줄 사람이 없었기에 그 역할도 할 수 밖에 없었어요. 산재 피해자들의 상담소 역할까지 했어요.

 

※ 원진레이온 사건 산재 보상을 받도록 했다고?

1966년부터 27년간 원진레이온합성 섬유 공장에서 일어난 노동자 집단 이황화탄소 중독 사건. 맹독 물질인 이황화탄소는 인체에 노출될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다.

60년대 경제 개발이 한창일 때 일본에서 식민 지배 배상을 하는데 현물 배상의 하나로 레이온 제조 기계를 줬어요. 여성 내의나 양복 안감에 사용됩니다.

돈을 벌기 위해 들어온 레이온 기계인데 그때 이미 일본에서 환자들을 많이 발생시키던 기계였어요. 일본에서 고철 기계가 온 거죠.

안전시설이 원래 되어 있죠. 그런데 기계가 노후 되어서 걸러져야 하는 이황화탄소가 그대로 배출되고 일하는 사람들이 이황화탄소를 계속 마시게 되는데 그렇게 5, 10년 계속 일하게 되면 몸에 쌓여서 하반신 마비, 신장이상, 심장마비, 정신분열 증세까지 나타났어요.

이 사건으로 308명 사망, 950여 명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한국 역사상 최악의 집단 산업 재해.

 

 

레이온 : 나무 펄프를 이황화탄소와 반응시켜 만든 실로 짠 견직물

 

88년도 7월에 신문기사를 봤어요. 원진레이온 근무자들이 하반신 마비로 퇴직시켜서 오갈 때가 없는 상태이다라고 이분들이 똑같은 부서에서 근무를 했어요. 문제의 기계와 밀접하게 일하는 부서였는데 40 ~ 50대가 되었다고 직장에서 중풍 걸렸다고 퇴직을 시키죠.

이분들이 처음에는 몇 년 동안은 자기 잘못인 줄 알고 있다가 직장 동료들이 점점 비슷한 병에 걸리고 이건 아니다 뭔가 있는 것 같다생각하는데 그 당시 분위기상 회사에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웠던 시기인데 제가 마침 직업병 관련 박사 과정을 공부하고 있어서 환자들과 상담했던 노동 상담소에 전화를 해서 그 환자들을 볼 수 있을까요?”해서 찾아가서 다 진찰을 했어요. 그 당시 중풍 환자와 비슷하지만 중풍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복잡한 증상들이 많이 나왔어요. 소통이 잘 안되고, 말을 더듬고 갑자기 눈물이 나오거나 슬픈 얘기를 하는데 헤죽헤죽 웃거나 거의 치매 상황이었어요. 이 병이 사람들의 뇌를 망가뜨리기 때문에 성격이 난폭해지고, 가정폭력을 일으키기도 하고

 

유재석 : 이 병의 원인을 모르니까 아무리 병원비를 써도 낫지 않았는거죠?

 

그분들 의무 기록을 쫙 해놓고 이 병은 뭘까?” 문득 수업 시간에 들은 게 생각나더라고요.

이황화탄소 중독은 온몸 여러 장기에 이상을 가져온다.” 그 길로 도서관에 가서 뒤졌죠.

1919년부터의 자료들을 내리 읽다가 이황화탄소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때 상당히 놀랐죠.

책에 나와 있는 장상이 낮에 본 환자들과 정확히 일치했어요.

그때 소름이 끼치면서 소명을 부여받은 것 같은 대한민국 의사 중에 환자와 과학적인 배경을 본 사람이 저밖에 없는데 내가 만약 입을 다물면 이분들은 그대로 고통 받을 텐데 그때 결심을 했죠. 의사로서 이분들을 받쳐주는 게 내 역할이겠다.

그때부터 내가 하던 병원을 다른 후배들한테 맡겨놓고 거의 전업으로 그분들과 함께 일하기 시작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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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재 인정을 받기 어려웠을텐데?

직업병으로 고생한 분에게 당신 술 먹고 계집질하더니 뇌 매독 걸린 거 아니냐?”이런 이야기를 듣고 회사에 찾아가니 되레 모욕을 당하고 회사는 완강히 책임을 부정하는거죠.

아무리 회사에 찾아가봐도 묵묵부답이니 운동이 될 수밖에 없는거죠.

이 분들은 열심히 일한 죄 밖에 없는데 벼랑 끝에 몰렸다.”라고 밖에 할 수 없죠.

저희들도 놀랄 만큼 차마온 분노를 터뜨리셨어요.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성화 봉송을 하는데 정부가 조사해서 해결해주지 않으면 성화 봉송로를 막겠다. 라고 전세계적으로 이슈를 만들겠다. 그랬더니 국회에서 해결책을 만들자는 연락이 왔어요. 국회에 가서 회사 쪽 대표들과 처음으로 대면해서 공식 산재 여부 판정을 위해 회사측 지정 의사 3, 피해자 측 지정 의사 3명이서 의사 대 의사로, 기록만 놓고 판단하자.

의학적 판단을 위한 산재 판정단이 꾸려졌어요. 해결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또 다른 고난의 시작이었어요.

회사 측 의사들의 주장이 개인적인 병일 수도 있다.”라고 일반적인 고혈압과 여러 병이 합치면 그럴 수도 있어요.

그래서 반론으로 어떻게 한 부서에서 비슷한 증세를 집단으로 보일 수 있냐?

회사측은 확률적으로 그럴 수 있다. 신장을 전공하는 내과 교수님이 신장 조직을 떼어서 그걸 전자 현미경으로 보면 거기에 많은 설명이 나와 있는 경우가 있다. 그걸 해보자.

저도 의사지만 신장 조직 검사에 따르는 사망률이 있어요. 신장 주변에 동맥이 지나가기 때문에 잘못 건드릴 경우 출혈로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해요.

저희 피해자 입장에서는 이미 교과서에 다 나와 있는 내용을 구태여 확인하기 위해서 조직 검사하다가 누가 돌아가시면 어떡해요.

근데 회사측 의사들은 꼭 봐야 되겠다는 거예요. 한 달은 고민하다가 조직검사 자원자를 받았더니 몇 분이 나서주셨어요. 엄청 고통스럽고 위험한데도 해주셨어요.

그리고 다시 모였는데 분위기가 달라졌어요. 회사측 의사들도 뭔가를 본 거예요.

기저막이 보통 사람보다 몇 배로 두꺼워져 있는 거죠. 피부에 자꾸 마찰을 주면 굳은 살 박이잖아요. 독성 가스를 계속 상대하다 보니 기저막이 두꺼워진거죠.

그 모습을 신장내과 교수는 처음 본거에요 반박 불가한 의학적 증거로 인정받을 수 있었어요.

 

 

※ 원진 사건 이후 하버드로 유학 가셨다고?

유학을 결심한 계기는 가난 속에서 가족을 책임지는 게 가장 급했기에 감히 유학은 상상도 못해봤던 원진레이온 그때가 딱 서른 살일 때인데 회사 측 의사들이 교수님들이에요. 우리는 재야 의사들이라서 사회적인 신뢰성이 다르잖아요. 좀 억울하기도 하고 공부는 내가 곧잘 했는데 대학교수에게 꿀리지 않을 것 같은데 적어도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 하고 오면 그런 일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할 수 있겠다. 미국 유학을 결심했어요.

 

※ 45세의 WHO 신입사원

의대생 시절 배운 WHO의 지향점

Everyone has rights to health "모든 사람은 건강할 권리가 있다.“

WHO에서 일하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꿈이 있었어요.

미국에서 일을 하는데 채용 공고에 제 전공하고 딱 맞는 게 나왔더라고요.

지원을 하게 되고 채용이 되었죠.

 

※ 저는 가난한 집에 다리를 저는 학생이 기회도 없고 절망적인 상황이었죠.

매일매일이 어두울 때가 많았죠.

절망하는 어린 저한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절대 포기하지 마라.”

너의 존엄함, 너의 정직함, 너를 믿고 이 세상에서 주는 기회를 찾아서 포기하지 말고 버텨라! 그러면 반드시 전혀 생각하지도 않았던 다른 차원의 세계가 열리고 너의 존재가 빛을 발할 거다.“ 그렇게 이야기 해주고 싶어요.

 

 

[유퀴즈 문제2]

이것은 잔치를 뜻하는 옛말에서 유래됐습니다. 정성을 들여 만든 음식이나 음식을 보내주는 일을 이것이라 했는데요. 여기에서 비롯돼 오늘날 국가나 사회에 공헌하는 사람에게 이것했다라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일까요?

 

[정답] 이바지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재미있는 포스팅으로 돌아오겠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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